치매에 걸렸는데도 너무 똑똑했던 그녀#03_베르나데트 수녀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그녀의 이름은 베르나데트이다. 베르나데트 수녀는 수녀 연구(the Nun Study)로 불리는 유명한 연구의 참여자였다. 켄터키 대학교의 과학자 데이비드 스노든(David Snowdon)과 동료들은 1986년 이래 678명의 가톨릭 수녀들을 대상으로 뇌가 어떻게 그리고 왜 노화하는지를 살펴보는 놀라운 연구를 수행했다.
지능 검사를 진행한 수녀 연구
연구의 한 과정으로서 노트르담 교육수도회의 수녀들은 정기적으로 지능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1분에 얼마나 많은 동물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동전을 정확하게 셀 수 있는지, 플래시 카드에서 본 단어들을 얼마나 많이 기억할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부모가 누구인지, 앓고 있는 지병은 무엇인지, 교육 수준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수녀들이 수십 년에 걸쳐 제공한 개인 정보 또한 세부사항에 따라 꼼꼼하게 분류되어 수녀원 기록보관소에 보관되었다.
수녀 연구를 통해 알려진 사실들
아마도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녀들 전부가 사후에 자신의 뇌를 기증하기로 한 것일 듯싶다. 이렇게 수집된 수녀들의 뇌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분석하기 위해 실험실에 보관되었다. 수녀들의 경우 과도한 흡연이나 음주 등 뇌에 그리 좋지 않고 연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수많은 습관이 없는 편이기 때문에 특히 훌륭한 연구 표본이다.
수녀 연구를 통해 수십 건의 흥미진진한 결과들이 발표되었는데, 한 예로 치매가 가벼운 뇌졸중이나 엽산이 부족한 식단과 연관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꼽을 수 있다. 20대에 자서전을 쓰며 복잡하고 낙관적인 생각들을 가득 담아 매우 공들여 문장을 썼던 수녀들이 수십 년 뒤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낮았다는 연구 결과는 특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베르나데트 수녀의 뇌
이렇듯 새롭게 밝혀진 놀라운 연구 결과 사이에서도 베르나데트 수녀의 이야기는 유난히 두드러진다. 수녀들 사이에서 그녀는 스타였다. 일찍이 석사 학위를 딴 그녀는 21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7년 동안은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재직했다. 81세, 83세, 84세에 치른 인지시험에서 그녀는 모두 최우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다 85세의 나이에 그녀는 치명적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베르나데트 수녀의 뇌는 누구의 뇌인지 명시되지 않은 상태로 분석실로 보내졌다.
얼핏 보기에 그 뇌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무게도 1,020그램으로 대략 정상이었다. 하지만 스노든 박사가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베르나데트 수녀의 뇌는 무언가 매우 다른 사정을 드러냈다. 연구의 대상이며 연구 과정 동안 애착을 느끼게 된 수녀들과의 관계를 감동적이고 내밀하게 기록한『우아하게 늙기Aging with Grace』에서 스노든 박사는 베르나데트 수녀의 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거의 의심할 여지없이 알츠하이머가 널리 퍼져 있었다. 해마와 새겉질(신피질)로부터 이마엽까지 온통 엉켜 있었다. 새겉질에는 플라크까지 잔뜩 끼어 있었다.”
그 상태가 너무 심각하여, 베르나데트 수녀의 알츠하이머 등급은 알츠하이머의 정도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척도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인 6단계일 정도였다.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었다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죽는 순간까지 인지적 챔피언이었던 그녀가 어떻게 알츠하이머의 표식인 광범위한 플라크와 엉킨 매듭들을 가지고 있던 것일까? 당시 느꼈던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스노든 박사가 말했다.
“새겉질에 플라크와 매듭이 그렇게 많은데도 그 뇌영역의 기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보존된 것 같았어요. 그녀의 새겉질이 마치 어떤 이유로 인해 파괴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죠. 베르나데트 수녀는 우리들이 훗날 ‘탈주자(escapee)’라고 이름을 붙인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보여요.”
탈주자? 그게 가능한가?
뇌에 치매를 시사하는 모든 물리적 징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데트 수녀를 보호해준 무언가가 있었을까? 그녀가 썼던 알찬 문장들이 그런 존재였을까? 베르나데트 수녀의 사례가 흥미롭지만 기묘한 것에 불과하다고 무시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는 쉬울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우연히 발생한 사례였다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례는 우연이 아니었다.
체스를 잘 두었던 교수
런던에서 은퇴한 어느 교수의 사례를 보자.
과학 연구에서 체스 선수(the Chess Player)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 교수는 체스 두기를 매우 좋아했고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체스를 두는 동안, 그는 쉽게 일곱 수를 앞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때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차렸다. 아내와 가족들은 그가 멀쩡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걱정이 되었다. 체스에서 네 수까지밖에 앞서 생각할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다고 확신한 그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대학교 신경학연구소의 신경과 의사 닉 폭스(Nick Fox)의 진료소로 찾아갔지만 아무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교수는 치매의 조기 징후들을 탐지할 의도로 만들어진 종합 검사를 유유히 통과했다. 뇌 스캔도 정상이었다.
당시 일흔 셋이던 교수는 계속해서 체스를 두고, 역사책을 읽고,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들을 요리하며 가족의 재정을 관리했고, 심지어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기까지 했다. 그는 뇌 스캔도 계속해서 받았지만, 심각한 변화는 거의 탐지되지 않았다.
이삼 년 뒤 교수는 뇌와 무관한 원인으로 사망했다. 부검을 하자 알츠하이머 플라크와 엉킨 매듭 투성이의 뇌가 드러나면서 교수의 가족과 폭스를 깜짝 놀래켰다. 교수는 치매 말기로 보이는 병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겉으로 드러난 유일한 징후는 교수가 체스의 수를 일곱 수 대신 네 수밖에 앞서 생각할 수 없었다는 점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어떻게 병으로 그토록 황폐화된 뇌가 여전히 그토록 높은 수준으로 제구실을 할 수 있었을까?
무언가가 체스를 두는 그 교수의 뇌에 보호막을 쳐놓았던 것일까? 그도 베르나데트 수녀처럼, 탈주자였던 것일까?
누가 어떻게 탈주하는가?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은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뇌 손상을 더 잘 견디는 것 같은지, 또는 어째서 똑같이 심각한 뇌졸중을 겪은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심각한 장애를 입고 다른 사람은 회복하는지를 두고 곤혹스러워했다.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인지적 비축분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인지적 비축분’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뇌가 힘의 비축분을 가지고 있거나 계발하여, 사정이 힘들어지면 마치 베르나데트 수녀나 체스 선수(교수)의 뇌처럼 보호막을 제공하리라는 것이 ‘인지적 비축분’의 개념이다.
인지적 비축분을 가진 사람들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더 똑똑한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차출할 수 있는 더 강하고 더 끈질기거나 더 효율적인 뇌 연결망이나 복구 시스템을 비상용 뇌력으로 비축해둔 것과 같다.
폭스가 말했다.
“우리가 (그 체스 선수를) 부검했을 때 깜짝 놀랐죠. 미약한 수준의 기능장애 징후를 보였던 사람이 (뇌 안에서) 그토록 광범위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죠.”
이 비축분의 실체는 정확히 무엇일까? 눈에 보일까? 만질 수 있을까? 원한다면 더 얻을 수 있을까? 인지적 비축분의 이야기는 아직도 전개 중이다. 뇌에 관해 우리가 들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고무적이며, 이제까지의 연구 가운데 중년의 뇌를 위한 최고의 소식인 건 분명하다.
교육의 연관성
다른 요소도 있지만, 여분의 뇌력 생산에 크게 기여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이다.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필요할 때 뇌의 많은 부분들을 호출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지적 비축분의 현주소에 관해 언급하던 카츠만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육은 뇌를 바꿉니다. 이제는 분명해요. 정확히 어떤 경로로 바꾸는지는 모르지만 교육은 뇌를 바꿉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연구를 통해 교육 수준(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는 문맹의 수준)과 뇌의 건강한 노화 사이에 아주 뚜렷한 선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교육은 일반적으로 장수와 연계되어왔다. 왜 이 두 가지가 연계가 되어 있는지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지만 연계가 되어 있다는 개념 자체는 여전히 확고부동하고 진지하다.
중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대규모 역학 연구의 하나에서 카츠만은 1980년대 말 상하이에 살고 있던 5,000명의 사람들 중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중학교나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두 배나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웨덴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치매율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들이 발견되었다. 카츠만은 훗날 자신의 발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알츠하이머병은 민주적인 과정을 지닌 질병이다. 의사나 심리학자, 체스 고수, 물리학자, 또는 수학자나 음악가도 이 병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수많은 지역사회 연구에 의하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거나 조금밖에 받지 못한 사람들이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이는 … 의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심오한 의미를 함축한다.”
지은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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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스트로치(Barbara Strauch)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스데이(Newsday), 타임스(The Times) 지에서 과학 및 의학 소식을 담당했으며,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서 의학 및 건강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바버라 스트로치가 총괄한 뉴스데이 특별취재팀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인『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The Primal Teen)』가 있다.
출처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461587&memberNo=21480482&vType=VERTICAL |